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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분쟁의 부끄러운 모습은 어디로부터 시작될까? 많은 경우 그것은 요나의 선택을 따른 까닭이다. 왜 다시스를 선택했을까? 하나님의 소명에 합당한 응답의 길로 포장된 자신의 야망이 그곳에서 실현될 꿈을 꾸었기 때문이다. 좀 더 나은 자리에 앉아 뭔가를 이루고 가져 보겠다는 깊은 곳에 자리한 인간의 탐욕, 그것은 사실 인간의 삶이 처음 시작 되던 때부터 이제껏 중단되었던 적이 없었다. 하나님은 니느에로 가라 하셨건만...

 

다시스로 가는 길은 불순종의 길이었다. 언제부터인가 mom-monism이 성장이란 이름으로 교회 안에 자리를 잡고, 이제 교회는 성공이라는 세상의 가치로 부흥을 말한다. 복음을 전할 자는 웰빙에 초점을 둔 소비자 중심의 현란한 말 재주로 사람을 모으고 마침내 권력을 얻는다. 주위에는 아첨꾼들이 모여들어 속으론 자기 유익을 구하며 총성을 맹세한다. 권력자는 더욱 빛나는 명예와 거대한 부를 향해 끝없이 타오르는 욕망 안에 자신을 내던지고 사탄은 계속해서 기름을 부어댄다. 이제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를 넘본다. 그게 가능할까?

 

물고기 배속의 어두운 곳 거기가 다시스를 선택한 대가로 주어진 회개의 기도처다. 아픔과 고통의 심연 속으로 들어가 아집과 탐욕과 교만의 자아를 내려놓고 철저한 돌이킴이 있어야 한다. 십자가의 삶이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신 삶이 아닌가? 인간이 세워놓은 제도적인 법의 잣대 이전에 말씀으로 여과된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제라도 하나님의 공의가 강같이 흐르게 하고 거기에 사랑의 배를 띄워 영혼을 살리는 진정한 목회적 소명, 아니 그리스도인의 소명의 길을 새롭게 걸어가야 할 때다. 질곡의 순례의 길일지라도 그곳이 니느웨로 가는 길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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