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E Login


 

칼빈_1~1.JPG

 

2) 칼빈

 

개혁자 중에서 칼빈(John Calvin, 1509-1564)은 가장 음악적 소양이 적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학교 교육은 음악을 포함하고 있긴 했지만 그는 음악적으로 두드러진 점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의 음악에 대한 태도는 어떤 음악적 이론보다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서와 하나님의 주권에 그 초점을 두었다. 따라서 그의 신학적 음악관도 이러한 근본적 원리 위에 서 있음을 볼 수 있게 되는데, 대체적으로 그는 음악에 관하여 낙관적인 생각보다는 비관적인 생각을 더 많이 하였다. 즉 인간이 만들어낸 노래는 경박하고 이단적인 것이 끼어들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또한 예배에서 음악이 감각적인 즐거움을 위해 사용되는 것을 우려하였고 그런 가능성을 내다보았다.


그러므로 예배에서 다성 음악과 악기 사용을 금하였다. 특히 악기사용을 금하는데 있어서는 고린도전서 14장 15절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를 근거로 하였는데 악기의 사용은 말씀을 흐리게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는 또한 갈라디아서 3장 23-25절을 적용하기도 하였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온 후에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 하도다.”

 

그가 이 성구를 인용한 이유는 신약시대를 율법의 시대가 아닌 믿음의 시대로 파악하고 악기 사용이 구약에 많이 나타난 것과 연관시켜 악기와 구약과 율법을 한꺼번에 묶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배음악으로는 자국어로 된 회중 찬송으로 운율 시편가만을 허용하였고 무반주 유니슨(Unison)으로 부르게 하였다. 이러하듯 그의 음악관에 기초한 내용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말씀이 없다는 이유로 악기 연주를 반대하였다.
(2) 다성음악이 말씀을 분명하게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단성부 음악만을 허용하고 다성음악은 불허하였다(다만 가정에서는 허용하였다).
(3) 성경 안에 있는 노래 가사만을(시편, 칸티쿰) 사용해야 한다고 보았는데 이것들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4)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의 힘에 크게 주목을 하였으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사용되는 것을 즐거워하기보다는 타락과 자기도취를 위해 오용되는 것을 걱정하였다. 

 

그러나 칼빈의 이러한 음악관에도 불구하고 실제에 있어서 제네바 시편가 곡조의 제작과정은 루터가 위텐베르그(Wittenberg)에서 한 것과 비슷한 과정이었다.「칼빈의 첫 시편가」(Calvins First Psalter, 1539)의 저자 테리(Richard R. Terry)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역사는 이상한 아이러니로 꽉 차 있지만 카톨릭 궁정에서 여흥으로 시작된 불란서 운율 시편가가 불란서 개신교의 가장 엄격하고 독점적인 노래가 된 것처럼 이상한 것은 없을 것이다.

 
여기서 참고로 언급하건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성이 한국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현행 찬송가집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교회음악에 관한 많은 한국 문헌들의 일반적인 주장대로 기준(복음성가는 예배시 사용할 수 없음)을 삼아 분류해 보면 진정한 의미의 찬송가는 불과 10%도 되지 않으며 복음성가가 60% 이상을, 그리고 나머지가 약간의 복음찬송가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전혀 찬송가로서 조건을 갖추지 못한 곡들도 찬송가편에 수록되었음을 보게 되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곡을 들 수 있다.
                      

                                       “어머니의 넓은 사랑”
                                                  (찬 304)
                                                     
                                어머니의 넓은 사랑 귀하고도 귀하다
                                그 사랑이 언제든지 나를 감싸줍니다
                                내가 울 때 어머니는 주께 기도 드리고
                                내가 기뻐 웃을 때에 찬송 부르십니다

이 노래는 찬송가가 아니라 찬모가이다. 즉 대상이 바르지가 않다. 대상도 하나님이 아니며 내용도 하나님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 어머니의 신앙과 모성애를 노래한 것으로 찬송가로서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이다.


                                       “어두운 밤 마음에 잠겨”
                                                (찬 261장)
                                            
                             어둔 밤 마음에 잠겨 역사에 어둠 짙어질 때에
                               계명성 동쪽에 밝아 이 나라 여명이 왔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빛 속에 새롭다
                            이 빛 삶 속에 얽혀 이 땅에 생명탑 놓아간다

 

이 노래에서는 찬양의 대상이 하나님이 아닌 것은 물론이며 간접적으로라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 전혀 없다. 따라서 복음성가로도 인정하기 어려운 노래로 차라리 애국가라고 부르기에 합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