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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 안에서

 

기독교의 지나온 역사를 되돌아보면 예배에 나타나는 음악의 영향력이 매우 큰 것이었음을 새삼 느끼게 한다. 그렇기에 과거 20세기 동안에 걸친 음악의 변천과정을 연구하는 것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분야를 완전하게 다룬다는 것은 너무나 광범위하다. 왜냐하면 음악의 변천과정은 그 홀로의 독립된 과정이 아닌 필연적으로 신학적인 배경과 함께 그 시대 시대마다 다른 여러 학문과 복잡한 연관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개신교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세 사람의 종교개혁자, 즉 루터, 칼빈, 쯔빙글리의 음악관을 간단하게 살펴보는 것으로 한정(限定)하려 한다.


1) 루터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독일 아이스레벤(Eisleben)에서 태어난 종교개혁자이다. 후세의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신학자, 철학자, 독문학자 등으로 일컫고 있으나 교회음악 교육자로는 그의 업적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는 교육열이 대단한 아버지의 영향아래 철저한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수도사로서의 그의 배경이 그에게 기도하는 사람의 경건한 삶의 가치와 음악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갖게 하였다.


그는 전통적인 그레고리안 찬트(Gregorian Chant)를 깊게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노래한 사람으로서, 류트(lute) 연주자로서, 그 시대의 폴리포닉(Polyphonic)양식의 음악을 작곡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음악을 교회에 수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교회의 일에 음악을 적극적으로 사용한 개혁자였다. 이러한 그의 음악관은 독일 개신교 음악의 밑바탕이 되었으며 예술음악이 교회 안에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였다. 아래의 글은 그가 음악을 얼마나 크게 생각했는지를 알게 하며, 그의 음악적 생각의 중요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다.

 

음악은 흔히 나를 깨우치고 나에게 설교의 기쁨을 안겨주는 하나님의 아름답고 훌륭한 은사이라...... 음악은 하나님의 한 은사이다. 음악은 마귀를 몰아내고 회중을 즐겁게 한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모든 진노, 음란, 오만 및 그와 같은 것을 잊어버린다. 나는 신학 다음으로 가장 높은 자리를 음악에 주고 가장 위대한 존경을 음악에 바친다. 나는 음악을 별로 알지 못하지 만 다른 어떤 위대한 것과 바꾸기를 원치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 다음으로 음악만이 인심(人心)의 감정의 여왕 및 여교사의 격찬 받을 가치가 있음은, 경험이 입증한다. 음악은 마귀에게 맛없는 것이요, 또한 마귀를 견딜 수 없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나의 마음은 음악에 응하여 끓어오르고 충만하게 되는데 이 음악은 흔히 나를 새롭게 하고 무시무시한 재난에서 구출한다.

 

루터의 음악은 “회중에 의해 불려지는 찬송(Hymn)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데 그것은 만인 제사장직을 주장하는,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신도 개개인이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는 신학적 해석관이 그 기초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루터의 종교개혁 당시의 카톨릭 음악과 신교 음악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은 “카톨릭은 거의 라틴어를 사용하였고 신교는 자기 나라 말이나 언어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한편 음악적인 면에서 루터가 가장 공헌한 것은 코랄 제작에 있어서 독창적으로 이오니아 선법(Ionian Mode)을 사용한 것이다. 루터는 중세의 음악이론을 잘 알고 이를 사용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마이스터징거(Meistersinger) 전통을 채택하였고 확대하여 새로운 것을 창작하는 혁신 가였다. 루터는 그 당시 가장 진보적인 음악이론에까지 손을 대어 중세의 8개의 교회선법을 12개로 확대한 것을 통해 오늘날의 장조와 단조의 조성(Tonality)을 낳게 하는 길을 열었던 것이다.

 

이상과 같은 것들을 중심으로 하여 루터에 관한 문헌들을 살펴볼 때 “루터의 찬송이 특별히 중요성을 띠고 있는 점은 그것이 수 천 년간의 성직자의 통제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인 라인홀드 리버의 다음과 같은 기도문을 음미해 볼 필요를 느낀다. "주여, 변화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담하게 변화하게 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옵고 또한 보존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대담하게 보존해 갈 수 있는 침착함을 주시며, 그리고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여 우리에게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