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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의 예루살렘 성전 모독 사건


단11:31

본문은 헬라 제국의 4대 분할 왕국 중 하나인 시리아 왕국의 셀류쿠스 왕조 제8대 왕(王)인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B.C. 175~163년)가 예루살렘 성전(聖殿)을 모독(冒瀆)한 사건에 대한 예언(豫言)을 기록(記錄)하고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는 유대를 독립시킨 마카비 혁명(B.C. 166년)의 기폭제가 된 것으로 그 의의(意義)가 참으로 큰 사건(事件)이었다.


또한 구속사적으로 볼 때 이는 종말에 적그리스도가 자신을 하나님이라 칭하면서 성전에 "멸망의 가증한 것"(마24:15)을 세우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모독(冒瀆)할 것에 대한(살후2:4)  예표적(豫表的) 사건으로서도 그 의의가 큰 사건(事件)이었다.


따라서 비록 본문은 본 사건이 실제로 발발(勃發)하기 약400여 년 전에 본 사건에 대해 주어진 예언(豫言)이지만 이 사건을 살펴보는 것은 일차적으로 다니엘의 예언이 얼마나 정확하게 성취되었는가를 확인하게 하는 것이며, 나아가 말세에 등장할 적그리스도에 대(對)한 분명(分明)한 경계(警戒)가 되게 하는 것으로 그 의의가 큰 바, 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1. 에피파네스의 등장 배경


에피파네스는 시리아 왕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정복자인 안티오쿠스 3세(B.C. 242~187년)의 셋째 아들로서 그의 형(兄) 셀류쿠스 4세 필로파토로(B.C. 187~175년)의 뒤를 이어 셀류쿠스 왕조(王朝) 제8대 왕(王)으로 즉위(卽位)했다. 에피파네스는 왕(王)이 되기 전에 14년 동안 로마에 인질로 잡혀 있었다. 그 이유는 그의 부친(父親) 안티오쿠스 3세가 B.C. 190년(年) 카르타고의 장군(將軍)인 한니발과 연합(聯合)하여 로마와 벌인 서머나 전투(戰鬪)에서 크게 패(敗)한 후(後)에 그를 볼모로 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피파네스는 로마에서 14년(年) 동안 살면서 헬라 문화(文化)에 깊이 심취(心醉)했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그는 왕이 된 후에 정치, 경제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황을 바로잡고 정치적 파벌 싸움을 잠재우기 위(爲)하여 강력(强力)한 헬라화 정책(政策)을 추진(推進)하였다. 그리고 나아가서 그는 올림피아(Olympia)의 제우스(Zeus) 신상의 모습을 따서 자신의 우상(偶像)을 만들고 백성들로 하여금 숭배(崇拜)하게 했다.


"에피파네스"(Ephipanes)란 이름은 "명백히 나타난 신"(神)이라는 의미의 헬라어 "데오스 에피파네스"에서 따온 것으로 자신(自身)을 신격화(神格化)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에게 "에피마네스"(Epimanes)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는데 그것은 "미친놈", "정신병자"(精神病者)란 뜻이다.



2. 성전 모독 사건의 발단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의 성전(聖殿)을 모독(冒瀆)하게 된 근본(根本) 원인(遠因)은 그의 헬라화 정책(政策)에 있었다. 에피파네스는 왕위에 즉위하자마자 시리아 왕국은 물론 유다 지역까지도 장악하여 강력한 헬라화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애굽의 프톨레미 왕조(王朝)와 가까운 유대의 대제사장 오니아스(Onias) 3세를 몰아내고 자신의 헬라화 정책(政策)을 적극(積極) 지지(支持)하는 야손(Jason)을 대사장직에 앉혔다.


그러다가 다시 유대인의 종교적 결속을 와해시키기 위하여 야손(Jason)을 몰아내고 제사장 아론의 혈통도 아닌 베냐민 지파 사람인 메넬라우스(Menelaus)를 대제사장으로 세웠다. 그러던 중에 B.C. 170년 에피파네스는 이집트를 침공하게 되었다. 그것은 당시 이집트 왕국의 왕인 프톨레미 6세 필로메트로가 과거 안티오쿠스 3세에게 빼앗긴 코엘레 시리아(Coele-Syria) 땅을 되찾으려고 전쟁(戰爭)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에피파네스가 미리 알고 선제 공격(先制 攻擊)을 했던 것이다. 이 전쟁에서 에피파네스는 이집트를 완파(完破)하여 이집트를 멤피스와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양분하고 프톨레미 6세의 동생인 프톨레미 7세(歲), 피스콘(B.C. 170~117년)을 또 다른 왕(王)으로 세워 두 정부(政府)가 서로 경쟁(競爭)하도록 만들어 놓고 본국(本國)으로 귀환(歸還)하였다(25~27절).


그 후(後) 1년 뒤인 B.C. 169년(年)에 이집트의 두 형제(兄弟) 왕은 에피파네스에게 대항하기 위하여 연립(聯立) 왕정을 수립하게 되었다. 이에 에피파네스는 재차 이집트 정복에 나서게 되는데(28절), 먼저 프톨레미 6세가 다스리던 멤피스를 정복하고 거기서 다시 진군하여 프톨레미 7세(歲)가 다스리던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하기 직전(直前)에 이집트에서 철수(撤收)하라는 로마 원로원(元老院)의 최후(最後) 통첩(通牒)을 받게 되었다.


로마에서 인질로 14년 동안 살았던 그는 로마 제국의 막강(莫强)한 군사력(軍事力)을 보았었기 때문에 감히 그 최후(最後) 통첩(通牒)을 항거(抗拒)하지 못하고 철수(撤收)하지 않을 수 없었다(29절). 그리고 철군(撤軍)하는 길에 시리아와 로마 사이의 완충 지역에 있는 유대의 충성(忠誠)을 확보해 두기 위하여 유대 지역에 이전에 비할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헬라화 정책을 시행하게 되었다(33절).



3. 성전 모독 사건


유대에 대(對)한 에피파네스의 헬라화 정책(政策)의 제1목표는 유대교를 말살하고 헬라 종교(宗敎)를 그 지역에 심는 것이었다. 이에 에피파네스는 2만 2천의 군대를 파견하고 유대인들이 안식일에는 싸우지 않을 것을 이용해 안식일(安息日)에 예루살렘을 공격 하게 했다.


이로 인해 예루살렘은 대부분 약탈(掠奪)당하고 불태워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죽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奴隸)로 잡혀 갔다. 그리고 B.C. 167년에는 드디어 유대인들이 조상(祖上) 대대로 지켜 오던 율법(律法) 준수를 금하기에 이르렀다. 즉 안식일 준수(遵守), 절기시에 행하는 축제(祝祭), 번제 제사, 어린아이의 할례(割禮) 등을 금지시켰다.


그리고 율법서(律法書)를 모두 불태우며 성전 제단에서 부정한 제물로 우상을 숭배(崇拜)하게 하고 유대인들에게 돼지고기를 먹도록 강요(强要)했다. 그리고 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어기는 자(者)는 누구를 막론(莫論)하고 사형(死刑)에 처하도록 했다.


이같은 가증스러운 행위(行爲)가 절정에 이른 것은 B.C. 167년 12월 16일이었다. 성전(聖殿)에 제우스 신상(神像)이 세워지고 번제단(燔祭壇) 위에 돼지고기 제물을 바쳤다. 그리고 이같은 제사를 매월 25일(日)에 지내게 했는데, 이 날은 에피파네스의 생일(生日)이었다.


유대인들로 하여금 에피파네스 자신(自身)을 위해 제우스 신상 앞에서 제사(祭祀)를 드리게 한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에피파네스의 크나큰 실책(失策)이었다. 유대인들의 종교성(宗敎性)을 전혀 이해(理解)하지 못했었다.


또 그는 유대인들의 종교적 전통이 마치 이집트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무조건(無條件的) 독단적(獨斷的)으로 이를 폐지(廢地)하고 헬라화 시키도록 하였는데 이는 유대인들의 감정을 극도(極度)로 자극한 것이 되었고 결국 마카비 혁명(革命)이라는 유대 독립(獨立) 전쟁(戰爭)의 도화선(導火線)에 불을 붙인 셈이 되고 말았다.



4. 의의(意義)


다니엘의 예언대로 B.C. 167년 에피파네스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더럽혀지는 사건이 역사적(歷史的)으로 발생(發生)했다. 이처럼 다니엘에 의해 성전 모독(冒瀆) 사건이 예언되고 이것이 역사적으로 분명히 성취된 사실은 비록 표면적으로 볼 때 역사가 마치 권력을 가진 이 세상의 악한 세력에 의해 좌지 우지되는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그 배후(背後)에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攝理)의 손길이 작용(作用)함을 증거(證據)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에피파네스의 성전 모독 사건은 궁극적으로 세상 끝날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신성(神性)을 모독하고 도전할 것을 예표(豫表)하는 것인 바, 그러한 적그리스도의 모독(冒瀆)도 하나님이 힘(力)이 없어서 가만히 보고 계시기 때문이 아니라 이 세상에 죄악(罪惡)이 관영(官營)하여 최종 심판하실 날까지 잠정적(暫定的)으로 허용하심 때문이며 이제 성도들은 결코 놀라거나 의아(疑訝)해 할 필요(必要)가 없음을 교훈(敎訓)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절대(絶對) 주권아래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 성도들은 환난 가운데서도 오히려 소망(所望) 중(中)에 찬양하는 역동적(力動的)인 신앙(信仰) 생활(生活)을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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